• 죽은 자들의 시대

2001911일은 많은 측면에서 다소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책상에서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스크린이 아나라 텔레비전 스크린을 몇 시간 동안 응시했다. 우리는 너무 놀랐고, 비틀거렸고,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 종일 자신의 일을 했다. 미국의 사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미국의 문화는 비록 충격을 받았지만 계속되었다. 우리는 경악하고 공포에 떨었지만 각자의 일을 계속했다. 일은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일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생산적인 날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3천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것은 모두 하루의 일과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저 평범한 날의 일이었다. 경찰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이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부의 권한과 힘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2001910일에도, 3천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912일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1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아기들이 살해되는 소름끼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도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내일도 역시. 무슬림 테러분자들이 하루에 3천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초조해서 손을 비벼대게 하고, 울고 통곡하고 하고, 응답해 달라고 하늘에 애원하게 한다. 낙태찬성자들이 매일 똑같은 짓을 범한다는 사실은 심지어 우리 뇌리에 입력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과 같은 일이다. 오늘 그것은 또다시 일어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며 냉소적으로 빈정거리듯이 말한 사람은 조세프 스탈린이었다. 그는 힘든 사실을 간단히 말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고난과 관련하여 유한한 동정심과 유한한 능력밖에 없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가서서 우리의 동정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게 하는 것은 선동가가 사용하는 악마적인 기술이다. 2001911일에 일어난 일은 비난할 만한 비극적이며 악한 짓이었다. 왜냐하면 민간인에 대한 비열하고 정당한 이유가 없는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의 악을 더 잘 보기 위해 이 악을 작게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순간적인 악으로 인해 매일 벌어지는 악에 신경쓰지 못해도 안 된다. 사실상, 우리는 저녁 뉴스가 우리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도록 허락해선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9/11에 쏟아 부은 시간이나 에너지와 우리가 낙태의 악에 쏟아 붓지 않은 에너지 양 사이의 어마어마한 간격이 궁극적으로 텔레비전의 보도 우선순위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낙태가 예사로운 일이기 때문인 것도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낙태에 대해서는 안심하면서 호전적인 이슬람의 무장에 대해서는 긴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는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낙태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지만, 테러분자들의 공격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격분은 도덕적인 악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희생자가 될 확률이 얼마나 높으냐에 기초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는 그것 참 안 됐네라고 중얼거리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우리 일을 계속한다. 그러나 과녁이 우리 자신의 등이 될 때에는, 우리는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때라는 것을 안다.

 

낙태의 악은 그냥 외부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사악한 낙태찬성자들과 무지한 여자들이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죄가 있다. 테러를 일으키는 악과 낙태 산업을 발전하게 하는 악은 우리로 하여금 악 자체보다 우리 자신의 안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똑같은 악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우리에게 적어도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신다. 첫째, 하나님은 생명의 가장 작고 세밀한 부분까지도 상세하게 관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시고, 어머니의 태속에서 우리를 조직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가장 작은 것들까지도 돌보신다. 하나님은 만물이 자신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만물을 정밀하게 통제하신다. 만물은 하나,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상 하찮은 것이란 없다. 만약 하나님이 참새를 돌보신다면, 하물며 우리들 각각을,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얼마나 더 많이 돌보시겠는가?

 

세 번째 요점은 좀 어렵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에 관심을 가지심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것에 관심을 가지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아젠다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우리 주변의 세상이 아니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문제는, 이를 올바로 이해하자면, 그들이 우리를 죽인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죽을 때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낙태의 문제는 그 끔찍한 일에 연루된 사람들이 그토록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토록 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했던 바리새인들처럼 운다. 우리는 하나의 악에 대해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더 큰 악을 행하는 우리의 방식에 대해서는 미소 짓는다. 우리는 이슬람과 그 피의 언월도로 인해 초조해서 손을 비벼댄다. 우리는 자신의 손에 있는 피와 우리 한 가운데 있는 피 묻은 수술용 메스를 주목하지 못한다. 하루는 우리가 기억한다. 하루걸러 우리는 잊는다. 악을 주목하고, 회개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은혜를 매일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 드린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김장복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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