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의 짐을 지라: 갈라디아서 6장 2절

갈라디아서는 거짓 교사들로 말미암아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고 명확하게 한 내용으로 유명하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탁월하게 드러내기 때문에(5:8; 요일 4:10), 바울이 복음을 명확하게 설명한 후에 사랑 자체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 짐을 지심으로써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또한 사랑한다는 것이 교회에서 형제자매들의 짐을 지는 것임을 안다. 이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것이다(6:2). 이것은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지님을 의미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쉽게 오해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안타깝게 여기고서 그들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동정심을 느끼고 그것을 사랑으로 오해한다. 우리는 돕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적어도 나는 관심을 보였어라고 중얼거림으로써 스스로를 달랜다. 이들 중 어떤 것도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약속과 행동으로 정의된다. 감정이 사랑에 수반될 수 있지만, 감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상, 참된 사랑은 감정이 없어질 때에도 지속된다. “사랑으로서로를 섬기는 것(5:13)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13:34; 15:12)은 서로의 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서로의 짐을 지는 것, 행함과 진실함으로사랑하는 것(요일 3:18)은 어떤 것인가? 누군가가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 때, 당신은 그들을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할 수 있다. 누군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 당신은 그들에게 전화할 수 있다. 당신의 이웃이 차 수리로 인해 재정적인 부담이 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그 고통을 조금 경감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에게 돈을 줄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도울 거라고 생각할 때, 당신은 자신이 바로 그 누군가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도울 수 있다. 서로의 짐을 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끝이 없다. 요점은 사랑이 감정으로 만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은 행동을 요구한다.

 

사랑은 교회의 표지이다

 

지역 교회는 사랑의 처소여야 한다. 바울은 교회 가족을 특별히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10). 우리가 사랑을 쉽게 오해하는 것처럼 교제도 쉽게 오해한다. 교제는 선호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결속하심에 기초한다. 우리의 결함은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며, 우리가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의 필요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단순히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이기 때문에 그들의 짐을 지라고 명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13:34).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연약함과 죄와 부정함의 짐을 진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이러한 짐들을 우리의 삶에 대한 폐로 보지 않고 우리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

 

사랑은 세상을 향한 증언이다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 법은 (거의 확실히)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다(13:34). 이 법을 성취하는 것은 하나의 증언이다. , 우리가 그 명령을 지킬 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 것이다(35). 요한일서 412절은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깨어지고 파편화된 세상에게 서로를 위해 짐을 지는 그의 자녀들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하신다. 교회 가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보기를 세상에 보여줄 책임이 있다.

 

나는 사랑하는 회중의 목사로서, 수년 동안 짊을 져주는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필라델피아의 어린이 전문 병원에서 내 아들 제이콥과 함께 있다. 내 아들이 이곳에 입원한 것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나는 제이콥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고 식사가 즉각적으로 준비되며 또한 나머지 가족을 돕는 차량 운행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처럼 짐을 져주는 사랑은 이 의료적인 시련이 우리 가족과 교회 사이의 교제를 더 깊게 해주는 계기가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만이 아니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집사회의 기금을 통해 재정적인 짐을 덜어주고,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힘든 가정들을 돕고, 병자나 장애인들의 생활공간을 개조해주고, 사람들을 태워 교회로 데려다주며,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랑의 행위들을 하는 것을 보아왔다. 이것은 짐을 지는 사랑이며, 온 세상의 지역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에게 짐이 있다면, 그것을 알리라. 그리고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의 짐을 안다면, 사랑으로 그 짐을 지라.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세상이 알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김장복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07길 15, 202호 TEL 02-6052-9696 FAX 02-578-9679 [개인정보취급방침]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07길 15, 202호
TEL 02-6052-9696 FAX 02-578-9679
Copyright(c) 2016 개혁된실천사. All right reserved. Provided by 교회사랑넷
  • 앱스토어
  • 플레이스토어
  • 유투브
  • 페이스북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