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에게 복종하라: 에베소서 5장 21절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권위에 대한 반응이 이상하다. 우리는 이것을 몇 년 전에 있었던 점거운동에서 보았다. 형식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역할을 지니고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모임을 이끄는 목소리들이 나타났고, () 문화적인 드럼을 두드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똑같은 리듬을 확실히 내게 했다. 일반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는 리더를 모두가 따른다면 그것 또한 아이러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권위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써왔다. 예컨대, 성경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본문들 가운데 하나는 에베소서 521절인데, 거기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명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피차간의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남편들과 아내들도 자신을 서로의 권위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521절은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따를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한다. 당신이 올바른 권위를 발견할 때마다, 바울은 그것을 따르라고 말한다. 이 견해는 뒤따르는 구절들을 잘 이해하게 한다. 에베소서 522~33절은 하나님이 여자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남자에게는 그의 아내를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다고 가르친다. 여자의 이미지는 교회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존중한다(22~24). 남자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부를 자기희생적으로 인도하시고 신부를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25~28).

 

각자가 느끼는 필요나 사랑의 언어나 개인적 취향 같은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결혼생활을 만드는 데 있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있다. 남편은 그리스도처럼 아내의 머리이다. 아내는 이 머리 됨을 인식하고 남편을 따름으로써 그의 머리 됨에 은혜롭게 반응한다. 이는 마치 교회가 예수님을 지배하거나 인도하지 않고 영광을 얻기 위해 항상 그분을 따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해석이 타당함을 안다. 왜냐하면 6장의 첫 몇 구절들은 두 번째 관계를 권위와 복종의 역학에 입각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해야 한다(6:1). 타협불가의 이 역할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에 대한 인식과 반응에 의존한다. 에베소서 522~33절과 61~4절은 연결되어 있다. , 이 두 단락은 신자들이 어떻게 에베소서 521절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에베소서 521절의 원리를 드러낸다.

 

우리는 여기서 확실한 성경적인 기반 위에 있다. “복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포탓소는 항상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셨고(2:51), 귀신들은 제자들에게 복종했고(10:17), 시민들은 정부 당국자들에게 복종하고(13:1,5), 우주는 그리스도께 복종하고(고전 15:27; 1:22),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신다(고전 15:28).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들을 계속해서 더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신자들은 올바른 지도자들에게 복종할 기회를 환영한다. 성경적인 복종은 결코 나그네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맹종하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상 정반대의 상태를 의미한다. , 합당한 인물을 따르겠다고 기쁨에 차서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복종은 또한 복종 대상의 완벽한 모습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도록 부르심 받은 교회 구성원들로서, 우리는 지도자들의 삶에서 죄를 볼 수도 있다(고전 16:15~16; 벧전 5:5).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에 대한 복종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과 제자도의 본질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을 때에,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주님은 옳고, 저는 틀렸습니다. 저는 주님께 복종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자가 하나님에게 보여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복종이다(12:9; 4:7).

 

가정과 교회는 복종이 꽃을 피우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들판이다. 가정에서, 남자는 인도해야 하고, 여자는 이 리더십을 철저하게 격려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복종은 어떤 결정이 내려질 때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 전에 시작된다. 교회에서, 구성원들은 장로들의 리더십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 모두에서, 복종은 의사결정 과정의 최종 지점에서 하는 동의인 것만이 아니다. 복종은 또한 남편들과 장로들이 지닌 비장의 카드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삶의 실재, 자세, 접근, 그리고 엄청난 특권이다. 만약 예수님 자신이 그분의 아버지께 기쁘게 복종하셨다면, 심지어 교회를 위해 죽을 것을 요구할 때에도 복종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패턴을 따를 수 없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거나 하나님 말씀의 권위-복종의 역학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현대인들의 귀에는 죽음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듣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말씀이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김장복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07길 15, 202호 TEL 02-6052-9696 FAX 02-578-9679 [개인정보취급방침]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07길 15, 202호
TEL 02-6052-9696 FAX 02-578-9679
Copyright(c) 2016 개혁된실천사. All right reserved. Provided by 교회사랑넷
  • 앱스토어
  • 플레이스토어
  • 유투브
  • 페이스북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