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인가, 모순인가?

우리는 사상의 일관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비하 당하고 특히 종교적인 문제에서 모순이 진리의 특징이라고 주장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 실제로, 인간은 일관성을 찾는다. 자유주의 개신교를 생각해보라. 수십 년 전에, 주류 교단들의 대부분은 성경의 오류불가성과 무오성을 버렸다. 원래, 이 교단들은 기독교의 다른 핵심적인 교리들을 계속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성경의 오류불가성과 무오성에 대한 거부는 다른 문제들에서도 기독교의 정통성을 부인하도록 이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성경의 오류불가성과 무오성을 버린 교회들 대부분은 결국 속죄, 성경적인 성 윤리, 그리고 다른 가르침들도 배척했다. 그러한 교단들은 일관성을 위해 그리 해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오류가 없음을 부인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을 만한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내용은 궁극적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성경의 실제적인 일관성을 연구할 때, 우리는 오래지 않아 성경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다뤄야 한다. 이 주장은 기독교 신앙에 엄청나게 파괴적인 것일 수 있다. 만약 성경에 진짜 모순이 들어 있다면 성경은 일관된 기사가 아니며, 만약 성경이 일관된 기사가 아니라면 성경은 신적으로 영감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원하는 주요 내용은, 모순이라고 주장되는 대부분의 모순들은 결국 전혀 모순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내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교수들은 성경의 오류불가성을 거부한 고등비평가들의 이론을 자주 가르쳤다. 나의 신학교 동료 가운데 매우 총명한 한 학생은 이러한 이론들로 인해 고심을 많이 했다. 그는 성경의 일관성을 믿은 채로 신학교에 들어왔지만, 졸업반이 되었을 때에는 성경에 대한 이 가차 없고 혹독한 회의론에 노출된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신학교 복도에서 그와 나눈 대화가 하나 생각난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R. C., 우리가 여기서 이 모든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어떻게 성경의 무오성을 아직까지 믿을 수 있니? 너는 성경이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거니?”

 

그 당시에, 그는 성경에서 모순 사례를 열 가지도 나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더러 집에 가서, 우리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모순 서른 가지를 찾아보라고 제안했다. 다음날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대략 스무 가지 정도의 목록을 가져왔다. 그는 나에게 첫 번째 모순을 제시했고, 우리는 함께 모순처럼 보이는 본문들을 살펴보았고, 두 기사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차이점과 모순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두 명의 목격자가 어떻게 동일한 범죄를 보고 그것을 서로 다르게 보도하는지에 익숙하다. 그들은 각자의 다른 관점들로 인해 그 사건의 다른 점들을 기억하지만, 두 기사의 세부 내용들은 충돌하지 않는다. 사실상, 수사 당국은 한 범죄에 대한 목격자들을 많이 원한다. 왜냐하면 목격자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비교해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이 하나의 사건을 리서치하고 그것에 대한 목격자의 기사들을 읽을 때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 친구와 내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첫 번째 성경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두 기사가 서로 일치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그럼 다음, 우리는 나머지 모순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사례들은 다른 사례들보다 더 해명하기 어려웠지만, 결론은 모든 사례에서 진정한 모순은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관점의 차이들을 발견할 것이다. 부활에 대한 복음서들의 설명을 생각해보라. 예컨대, 마태복음 281~10절과 마가복음 161~8절은 빈 무덤에 천사가 한 명 있었다고 말하는 반면, 누가복음 241~12절은 예수님의 무덤에 천사가 두 명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것은 내 친구가 나에게 제시했던 모순들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논증을 위해 거기에는 두 천사가 있었다고 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한 명의 목격자가 거기에 있었던 천사들의 수효보다는 거기에 없었던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더욱이 두 천사들 가운데 말을 한 천사가 한 명이었다면 마태나 마가는 그 천사만 언급했을 수 있다. 그 제자들은 두 번째 천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나는 거기에 갔었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한 천사를 보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두 천사가 있었다는 것은 글을 쓰고 있던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친구에게 이들 제자의 보도가 정말 모순이려면 거기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없는 단어가 무얼까?”라고 물었다. 대답은 명확했다. , ‘오직’(only)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만약 거기에 천사가 두 명 있었다면, 우리는 거기에 적어도 한 명의 천사는 있어야 했음을 안다. 따라서 마가와 마태는 거기에 천사가 오직한 명만 있었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누가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목격자의 보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이는 우리가 독립적인 기사들에서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갖기까지 많은 세기가 흘렀고, 많은 기자들이 있었다. 성경은 낙하산을 통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영감 교리는 우리가 성경에서 조화시키기 어려운 텍스트들을 발견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신성한 책이지만 매우 인간적인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이 인간의 오류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이 사람들의 이야기 방식을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두 명의 기자는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을 쓰지 않으며, 두 명의 인간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똑같이 보도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동일한 사건을 동일한 세부 사항들을 다루지 않은 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차이는 모순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김장복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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