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와 긍휼

로마서 914-18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예정은 하나님이 어떤 것의 운명을 미리 결정하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개념은 피조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모든 행위, 모든 강우, 모든 분자의 운동을 영원 전에 미리 예정하셨다(1:11).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예정에 관해 말할 때는 주로 구원과 정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선택(즉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에 대한 선택)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교리를 다룰 때는 많은 성경 본문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이 사람들의 결정에 대한 예지에 근거해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시는지, 아니면 오로지 그분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의해 결정을 내리시는 것인지를 옳게 파악해야 한다. 그런 성경 본문 가운데 가장 적절한 본문이 하나 있다면, 바로 로마서 9장이다.


선택에 관한 칼빈주의(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견해를 논박하는 데 사용되는 가장 흔한 논리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과 "하나님을 불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런 반론을 펼친 적이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반론을 제기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반론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바울은 2천 년 전에 로마서 9장을 기록하면서 그런 반론에 대한 대답을 제시했다.


바울은 하나님이 야곱은 구원하고 에서는 구원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것이 그들이 태어나서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나서(9:1-13), 하나님의 정의를 문제 삼을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감했다. 따라서 그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 정의의 문제가 아닌 긍휼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 자유를 지니신다고 강조했다. 긍휼은 요구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무적으로 베푸는 긍휼은 긍휼이 아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긍휼을 받을 만한 공로를 세울 수 없다.


긍휼은 정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의(injustice)도 아니다. 정의(justice)와 비정의(nonjustice)라는 두 가지 범주를 생각해 보자. 정의가 아닌 모든 것은 비정의(nonjustice)의 범주에 속한다. 그 안에는 불의(injustice)와 긍휼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이 긍휼이나 불의를 받는다면 정의는 못 받는 셈이 된다. 그러나 긍휼과 불의는 동등하지 않다. 통치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들 가운데 어떤 범죄자에게는 긍휼과 용서를 베풀고 어떤 범죄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통치자가 용서를 베풀지 않은 사람을 불의하게 다룬 것은 결코 아니다.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판결대로 처분을 받아야 마땅하다. 판결대로 처분을 받는다고 해서 그가 불의하게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관대한 처분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그분은 여전히 그들을 의롭게 대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정죄를 받을 만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코람 데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자들의 경우에도 여전히 정의가 시행되어야 한다. 선택받은 자들도 유기된 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대신해 정죄를 받으셨다(고후 5:21).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기로 예정하신 데에는 정의를 시행하기 위한 예정도 아울러 포함된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사람들의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미리 예정하셨다(4:27, 28).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의 죄를 온전히 속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속량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조계광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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