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전도서 714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형통할 때 즐거워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형통할 때 빠지기 쉬운 유혹만 경계한다면, 형통하게 사는 삶을 회피할 필요도 없고, 인생의 좋은 것을 즐기는 것이 반드시 잘못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예수님은 결코 부자가 아니셨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라고 경고하셨지만, 가나에서 혼인 잔치를 즐기셨다. 그분은 심지어 물로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 축하객들을 풍족하고 즐겁게 하셨다(2:1-12).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자들을 칭찬하신다(21:1-4). 그러나 희생하는 삶과 풍족한 삶은 본질적으로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명확히 보여주셨다. 아브라함은 크게 형통했지만 그는 또한 롯이 약속의 땅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하도록 허락했다(13).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 순종하는 자를 크게 형통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28:1-14).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우리가 형통하기를 바라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그분의 뜻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에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오늘의 본문도 형통한 날에 즐거워하라는 말로 이 점을 가르친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거나 하나님이 자신이 노력에 축복을 허락하실 때 즐거워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풍성한 축복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허락하신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는 이 타락한 세상의 현실을 진지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항상 물질적인 번영을 누릴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곤고한 날도 분명히 있다. 곤고한 날도 형통한 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축복과 시련을 작정하셨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서는 그 두 경우가 모두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련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편안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만이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편안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후대하시고, 어려운 때는 그분이 우리를 홀대하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시련의 때를 작정하셨다면 우리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8:28).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기 마련이다. 둘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그 모든 상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코람 데오


믿음이 성장하면, 편안한 날은 물론, 힘든 날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차츰 깊이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셨다면 마땅히 그분께 감사해야 한다. 현재의 형통함을 즐기고 있는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마음껏 즐겨라. 시련을 당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을 통해 자신의 나라를 더욱 널리 확장하실 것이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조계광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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