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창세기 5015-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0절 인용)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분을 아버지로 일컬으며, 영생의 확실한 소망을 갖는 것이다(1:12, 13, 3:16, 5:1). 또한 우리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을 누린다(5:2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모든 고통과 고난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살전 1:6 참조). 그리스도인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배척을 당할 수도 있고, 직업을 잃을 수도 있는 등, 믿음의 고백에 뒤따르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을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을 대놓고 박해하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더라도 이 타락한 세상에 사는 이상은 질병이나 아픔 등, 어떤 형태로든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어떤 형태의 고난을 당하든,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에 뒤따르는 고난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베푼다. 오늘부터는 고난의 목적과 의미를 비롯해 고난에 대한 신자의 온당한 반응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구약 성경의 지혜 문학에 관한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고난의 문제를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에 비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스프로울 박사가 펴낸 강의 시리즈 <<고난과 죽음을 말하다>>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고난은 이론적인 신학을 뛰어넘어 가장 긴급하고, 실천적인 것으로 보이는 문제의 핵심에 다다르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고난은 우리의 삶에 그런 불행이 닥치도록 허용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묻도록 이끈다.


그런 질문들이 제기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고난과 연관시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고난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고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으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성립될 수 없다. 하나님은 단지 행복한 일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 뜻대로 섭리하신다(1:11).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조차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 그분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난을 작정하신다. 요셉이 애굽에서 고난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이유는 자신의 고통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주권적으로 작정되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50:15-21).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고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고난을 비롯해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고 확신한다(8:18, 28).


코람 데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은 항상 선하다. 우리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온전히 선하시기 때문에(1:13-18)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섭리해 궁극적으로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고, 또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이해할수록 고난의 와중에서도 그분의 선하심과 은혜를 더욱 굳세게 신뢰할 수 있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조계광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되어 있으며 이 글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허락 하에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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